이분(?)이 안계셨다면 학교는 어찌다녔을꼬…

우여곡절끝에 장만한 나의 카메라..

어렵게 구한만큼 많은 기억들 남겨줬으면…

 

2008. 10. 10



미래의 프라이버시

2004039853 최종태

아침에 눈을 떠서 집을 나서면서부터 우리는 CCTV와 마주치게 된다. 엘리베이터 안, 버스 안, 길거리, 학교의 복도 등 어느 곳에나 CCTV는 국민의 모습을 24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다. 실용성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의 모습, 행동들이 누군가에 의해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제3자가 나의 하루 생활을 추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가능해 진 것이다. 인터넷을 접속하면 내가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지만 내가 지금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장소가 동 단위까지 자동으로 표시가 된다. 약간은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포인트를 적립받기위해 포인트 카드를 제출하자 영수증에는 나의 이름과 지금까지 쌓은 포인트가 인쇄되어 나온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위해 인터넷 쇼핑몰에 로그인을 하자 나의 이름이 표시되고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표시되고 기념일을 자동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내가 오늘 본 물건의 목록이 표시된다.

이렇듯 생활이 편리해 지면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를 내뱉는 멍청한 컴퓨터의 구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개인정보를 보여줄 것을 요구당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고, 기능이 추가됨에 따라 더욱더 많은 개인정보는 노출되어지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PDM이 솔루션으로 등장을 한다면 복잡하고 어려워서 잘 다뤄지지 않는 개인 정보 관리에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일정금액의 돈을 지불하고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음악의 저작권에 대한 복잡한 지식이 없이도 나는 앉은 자리에서 DRM에 대한 몇 개의 간단한 사실 확인만 받고 음악을 간편하게 다운받을 수 있다. 이것이 복잡한 저작권에 대한 솔루션으로 DRM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DRM처럼 개인정보에 대한 복잡한 법률적 지식이나 기술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사용이 가능한 PDM이 현실화 된다면 개인정보를 다루는 것이 너무 복잡해 아예 다루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일이 없이 진다.

사실 우리가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을 하기위해 동의하는 「이용약관」이나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동의」를 읽지 않고 클릭해 버리는 이유는 글이 너무 길고 복잡해서 일 것이다. 이 대신에 몇 개의 개인정보와 개인정보 활용에 대해 본인이 허용하는 정도를 미리 설정해 놓는 과정만 거치면 모든 개인정보가 그 정도로만 공유가 된다면 매 사이트를 가입할 때마다 나오는 그 긴 글의 압박을 받지 않고도 가입이 가능해 진다.

이것이 인간의 기계화와 연결이 된다면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의 중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인간의 기계화는 이미 조금씩 그 틀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인간의 신경계에서 만들어지는 자기장을 감지해 인간의 힘을 더해주는 장치도 개발이 되었다. 인간의 신경계도 전기적 신호로 작동이 되는 것이기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사실 기계가 사람을 본따 만들어진 것이지만 요즘엔 도리어 사람이 기계를 닮아가려 하고 있다.)

만약에 인간이 스스로 기계화에 성공을 한다면 지금의 모습대로라면 다른 인간의 신경계에 접속을 하던 아니면 서비스에 접속을 하던 매번 개인정보 동의에 대한 안내문을 읽고 동의해야지만 가능해지는 모습이 만들어 질 것이다. (물론 인간의 기계화가 성공하지 않길 바라지만)

이렇게 앞으로 기술이 얼마만큼이나 많이, 빠르게 발전할지 알 수 없는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PDM은 필수 불가결한 도구가 될 것이다.


 사실 난 정치에 대해 관심이 손톱만큼도 없다. 아니, 없었다.  정치라는것은 자기들 잘난줄만 아는 사람들의 전쟁놀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돌아가는 꼴은 동네 꼬마아이들의 그것보다도 더 한심하다. 그런모습만 20년 넘게 보아왔으니 내가 정치에 일말의 관심이 생길리가 없다.  어쩜 그런모습에 지쳐 정치란것은 아예 나쁜기억으로 자리잡아 기억속의 서랍에 쳐박아 놓고 굳게 잠가놔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 나의 길에 약간의 변화가 오면서 좋던 좋지 않던 정치는 다룰수 밖에 없는것으로 다가왔다.

 물론 지금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하기는 싫다. 여전히 나에게 정치는 지저분한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얘기가 다르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무엇이 그를 벼랑끝으로 몰고 갔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사람의 목숨앞에선 어떠한것에 대한 비유도 적절하지 못하다. 사람이 신체 기관이 기계 부속품처럼 교체되고 절재되는 것이 쉽게 이루어 지는 세상이라 신체에 대한 희소성이 사라졌을지언정 한사람의 영혼은 여전히 희소성이 남아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 의해 한사람의 죽음에 대한 판단이 좌지우지 되는것 같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TV를 통해 봤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아니길 바랬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공화국 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모습이란 말인가. 모든것을 다 제쳐두고 사람이 죽었다. 높디 높은 바윗덩어리에서 떨어져서 차갑게 식어갔단 말이다. 무엇 때문에 그의 영혼은 위로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린것인가? 무슨 잘못을 어떻게 저질르면 그런것이 가능해 질런지..

 그렇다면 4년뒤에 또다른 그는 어떤 모습을 보이며 사라져 가야 할것인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인가
냄비근성의 확인인가

  전자정보시스템전공 최종태 

2008년 5월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중심이라 불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펑범하게 잘살고 있던 시민들이 하나둘씩 거리로 나와서 촛불을 들고 평화적 시위라는 명목 하에 서울의 도로를 점령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과연 평화적으로 보였을까? 흡사 그것은 북한에서 장군님이라 칭하여지는 강자에게 홀려서 혹은 매도되어 자신의 두뇌, 가치, 존재는 철저히 배제된 체 거리로 끌려나온 공산주의의 모습과 비슷했다. 과연 이것이 21세기 첨단 산업사회를 달리고 있는 우리의 사회에 걸맞은 모습인가?

 

한 가지 의아한 점은 그렇게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던 수많은 국민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너무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성숙해졌었던 시민의식이 한순간 퇴보라도 한 것일까? 아니라면 그들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잠시 모인 그저 목적성 폭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촛불시위는 처음에는 정말 순수한 의도로 시작을 했을지도 모른다. 촛불시위가 처음 사회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사건은 효순이 미순이 사건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시민들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시위에 참가했다. 하지만 점차 그것이 도구화되고 있다. 처음의 순수했던 의도는 점차 찾아볼 수 없고 점점 목적화 되가는 듯하다. 온갖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집합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법적 취약점을 노린 일종의 정치활동인 것이다.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들의 언론 플레이에 국민들이 놀아나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실제로도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촛불시위가 하루라도 빠지지 않고 일어나고 있을 때 근거 없는 문자 메시지가 돌아다니는 메시지 파문이 발생했다. 누구로부터 시작했는지 확실히 밝혀내어 법적인 처리를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경찰은 어느 순간부터 문자 메시지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더니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도를 바꾸고 말았다. 오늘날 같은 온갖 기술력과 과학적인 지식이 판치는 시대에 문자 메시지를 추적하기가 힘든 것인가? 과연 그 메시지들의 시작은 누구였을까? 왜 하필 그 대상이 초등학생, 중학생들이었을까?

 

어쨌든 많은 국민들이 울부짖었던 쇠고기는 보란 듯이 수입이 되고 있고 그렇게 반대했던 것 치고는 너무나도 많은 량이 소비되고 있다. 정말 그들은 순수한 목적으로 진심을 다해 성숙한 모습으로 반대를 했던 것이 맞는 것인가?

 

우리의 국민성은 인정하기는 기분 나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순간 달아오르고 또 순간 식어버리는 이른바 냄비근성.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잘 모르고 있는 그 사실 때문에 누군가는 우리 국민들은 너무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에는 자신, 자신의 가족, 자신의 지인이 아니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자기중심주의가 국민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훨씬 더 쉬워졌다. 그 쇠고기가 자신의, 혹은 자신의 가족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우리 국민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촛불시위에 참가 했을까? 또, 요즘처럼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시대에 촛불시위를 일으킬만한 사건이 없었을까?

 

우리는 멜라닌 사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멜라닌과 쇠고기 두 사건은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점은 멜라닌의 경우 입게 되는 피해는 개인의 선택 여하에 따라 달라지지만 쇠고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못하다. 많은 음식에 쇠고기가 쓰이고 있고 소비자의 부지불식간에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촛불시위는 우리국민들의 성숙한 모습이라기 보단 극단적인 개인이기주의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철저하게 국민들의 철저한 의식 세뇌를 의도한 정치적 언론 플레이의 결과물인 것이다.

 

또 한가지 아직 매우 저급한 우리국민의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예를 들면 위키피디아가 있다. 웹2.0 이라는 고급문화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위키피디아의 경우 우리나라는 3월 28일 기준 93,355건(인구는 약 7800만명)이다. 우리나라와 다른나라와의 인구와 자료수의 비교를 다음표에 해봤다.

언어

인구수

언어사용인구수

등록자료수

인구대비자료수

한국어

5008만

7800만

93,355

0.1197%

네덜란드어

1640만

2400만

527,112

2.1966%

일본어

1억2808만

1억5400만

573,996

0.3727%

폴란드어

3851만

5000만

591,169

1.1823%

포르투갈어

1049만

2억

468,689

0.2343%

베트남어

8440만

8440만

78,172

0.0926%

슬로베니아어

200만

220만

74,307

3.3776%

우리의 인구대비 등록된 자료수는 어느나라에 비교해야 좋을지 모를정도로 형편없다. 물론 위의 결과는 인터넷 보급률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을 따라올만한 나라가 있을까? 아마 보급률까지 고려를 한다면 우리가 더욱 불리해질 것이다. 이것은 나눔과 공유에 대해 아직도 인색한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현상을 종합해 봤을 때 우리는 아직 성숙한 사회의 모습에 다다랐다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가지고 도덕경제니 성숙한 문화니 하기에는 아직 성급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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